평범한 영화
영화의 시작 부분은 그야말로 평범한 오락영화의 모습이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코미디 영화이며, 다소 가볍고 경쾌하다. 초반 코미디 부분은 하나의 큰 폭탄을 안고 시작한다. 바로 박민재가 구청장에게 제안한 명도소송이다. 명진구에서 장사하는 세입자, 건물주 사이에서 소송이 걸렸는데 구청에서는 건물주 편을 들어주려고 한다. 그리고 나문희, 우리들의 나옥분 여사는 당연히 상인들 편에 서서 싸우려고 한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마치 이 명도소송을 두고 박민재와 나옥분의 갈등을 그리려는 척, 능청을 떤다. 그리고 미국으로 입양을 간 나옥분의 동생을 등장시켜서 마치 영어를 배워서 동생과 감동적으로 재회하는 평범한 이야기처럼 보이려고 노력한다. 가만히 보다 보면 그대로 속아 넘어갈 정도로 잘 구성해놨다.
영화 초반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박민재는 명진 구청 종합민원과 에 발령받은 9급 공무원이다. 그리고 이 구청에는 아주 전설적인 민원인이 한 분 계신데 무려 8,000건의 민원을 제기한 바 있는 명진 구의 명물 나옥분 여사이다. 모든 일을 원칙대로 해결하는 박민재와 명진 구의 정의를 몸소 실현하고 계신 나옥분 여사의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이 부분은 상당 부분이 과장이다. 코미디를 위해서 현실성을 포기한 부분들이 좀 있다. 일단 박민재는 9급 공무원을 하기에는 스펙이 굉장히 뛰어난 친구이다. 토익 점수도 950점 이상이고, 유창한 회화 실력, 그리고 전반적으로 뛰어난 인재라는 느낌을 준다. 이런 인물이 9급 공무원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풍자인 셈이고, 박민재는 9급 공무원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9급 공무원이 구청장에게 직접 보고하고, 의견을 낸다는 것 자체가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일이다. 게다가 발령받은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말이다. 즉 박민재와 나옥분 사이에 갈등을 터트리기 위해서 미리 폭탄을 심는 작업을 해둔 셈인데, 이 부분에서의 개연성이 아쉬웠다고 하겠다.
스승과 제자
아무튼 민원 대마왕 나옥분과 박민재는 이상하게 자주 엮인다. 나옥분 여사는 친구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곤 하는데 옥분의 친구 정심은 영어 실력이 무척 뛰어나고 옥분은 그런 정심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정심은 자꾸만 옥분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옥분의 머뭇거리면서 둘의 사이에 무언가가 있음을 암시한다. 아무튼 정심에게 한소리를 들은 옥분은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어 공부를 진지하게 해 보려는 이 할머니에게 열려있는 배움의 공간이 부족하다. 직접 돈을 들여 학원에 가지만 쫓겨나기 일수다. 게다가 마침 박민재, 박주임이 엄청난 영어 실력자라는 걸 알고 박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거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 영화는 평범 그 자체다. 옥분과 민재는 서로를 의심하고 또 갈등하지만 민재의 동생이 매개체가 되어 친한 사이가 된다. 옥분의 영어 실력도 일취월장하고 민재는 아주 좋은 선생님이기도 하다. 민재가 선택한 교육 방법은 그야말로 손이 많이 가고 신경도 쓰이지만 성과가 바로바로 나오는 방식이다. 옥분은 민재에게 의지하고 민재와 함께라면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민재를 스승으로 따른다.
눈물 착즙기
일단 <아이캔스피크>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 나올 이야기는 어차피 정해진 거고, 빤히 보이는 스토리는 치우고 배우들 연기나 연출이나 확인하자라는 생각으로 보았는데 왜 나는 휴지를 챙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엄청나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몇 가지의 실수들도 보인다. 이재훈이 맡은 박민재의 캐릭터도 문제가 있고, 구청에서의 역할도 좀 과정 되어있다. 시종일관 코미디를 하고 있지만, 그 코미디가 다소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구성으로 봐도 그리 치밀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 문제들은 가볍게 눌러버릴 정도로 이 이야기가 지닌 감동은 상상 이상이다.
이 영화는 소수자, 약자에 대한 비하, 왜곡, 비난을 하지 않고도 웃음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태도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또 이 영화의 소재는 일반 영화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소재이다. 이야기 자체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그 이야기에 웃음을 밀어 넣는다는 시도는 자칫 잘못하면 큰 비난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최대한의 절제와 겸허한 태도로 웃음이 차지하는 위치를 잘 잡았다. 이 영화에서의 코미디는 무척 겸손하게 자신의 자리를 잘 알고 스스로 조심하는 느낌이다. 물론 이건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배우들이 결코 자신의 역할을 착각하지 않는다. 오버하거나 나서는 일이 아예 없는 거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주연 배우가 나문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위안부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보여주는 위안부 문제, 그 이야기들 참담한 현실과 나문희가 보여주는 용감한 모습은 저절로 울음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숭고한 것이다. 그렇기에 상업 영화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와 진심을 담아 위안부의 이야기를, 나문희를 숭고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경지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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